2008년 04월 21일
매화나무 한 그루
과천현대미술관 격월 웹진에 실린 에세이
꽃 떨어진다, 꽃 떨어진다, 꽃 떨어진다.
아침상을 차리느라 수저를 놓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연거푸 외치신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니 거실 유리문 밖으로 여문 봄꽃들이 봄바람에 후두두 낙화한다.
매화꽃은 툭툭 땅으로 곤두박질치는데 벚꽃은 허공에서오래도록 빙글빙글 회오리를 그린다. 숟가락을 들고 한참을 그렇게 서있었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앞마당에 나가있더라…….
3월께부터 햇살에서 봄을 느꼈건만, 유난히 따뜻해진 건 최근 일이다.
밥상의 모양새도 쑥이며 냉이 같은 봄나물로 향긋해져 몸도 마음도 풍요롭다. 일주일간 쑥국을 먹고 나흘 동안 냉이 부침개를 해먹었으니 머리꼭대기에서 꽃이라도 피어날 것 같다. 예전에는 잘 몰랐는데 올 봄 나는 ‘제철음식’이라는 게 괜히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가령 하우스 재배가 보편화되어 이젠 겨울에도 수박을 먹을 수 있지만 아무래도 여름수박이 최고일 터, 그건 단지 박이 달고 싱겁고 크게 여물고 잘게 여물고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라는 거다. 겨울수박은 겨울에도 여름을 삼킨다는 데 경이로움이 있지만 여름수박은 뜨거운 열기의 여름을 쪼개고 여름의 향긋함을 씹고 비로소 여름의 물기를 목구멍으로 넘겨 발끝까지 여름 기운을 퍼뜨리는 만족감이 있다. 수박씨는 더 새까맣고 말이다.
어쨌든 아직은 봄, 쑥과 냉이로 나는 봄이 되어 비로소 라일락 향기도 맡을 수 있고 나비도 보이고 거리의 활기도 느낄 수가 있다.
몇 주 전 일이다.
작업실이 있는 창동 근처를 배회하다가 단독주택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골목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서있지는 않아서 샛길이 있을 법도 했으나 다른 골목으로 접어들 구멍을 찾는 것은 번번이 실패하여 한참을 하릴없이 두리번거리며 지나게 되었다. 집들은 주거용으로만 사용하지 않는지, 곳곳에 ‘파이프 수리’라든가 ‘천녀보살’ 등의 간판이 높이 걸려있었다. 담장은 없거나 낮았고 대문은 대개 열려있었고 담장과 담장 사이의 그 샛길처럼 생긴 공간이란 그마저도 엉성하여 아이가 커서 더 이상 쓰지 않은 세발자전거라든가 오래된 빨래건조대 등이 아무렇게나 자리를 차지한 채 놓여있었다.
아이들이 모는 자전거가 요리저리 곡예를 부리듯 스치는 바람에 잠시 기우뚱하는 동안 얼핏 내 시선에 들어온 것은 몸빼 차림의 아주머니가 시장바구니를 들고 어느 집 현관문을 나서는 장면이었다. 나는 멈칫,했다.
담장도 없는 그 집의 현관문 앞 처마에는여름날 햇빛 가리개로나 쓰일 법한 플라스틱 차양이 늘어져 있었다. 아직 쌀쌀한 3월의 공기와는 왠지 어울리지 않았는데 십오륙 년은 족히 되어보이게 가장자리는 때가 끼고 그나마 푸르스름한 한가운데에 “福[복]”字가 커다랗게 엮어져 빛이 바랜 모양이었다.길 쪽으로 난 공간은 다용도실인지 고무대야와 장독들이 곡예 하듯 쌓여있었고 외벽은 칙칙했고 계단은 모서리가 부서져있었다.
별다를 것 없는데 왜 나는 발걸음을멈추어야 했을까.
매화나무였다.
시선이 비껴가는 곳에 시멘트로 마감된 그 집 앞마당―나는 감히 그곳을 앞마당이라고 부르겠다―에 매화나무가 한 그루 서있었다. 꽃들은 만개하여 금방이라도 송이를 똑 떨어뜨릴 태세로 무겁게 매달려있었다. 사실 아주머니의 몸빼바지가, 낡은 차양이, 간유리 너머의 고무대야가 나무 한그루 때문에 화려하게 탈바꿈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 순간 나는 눈앞의 풍경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영문도 모를 미소를 지었다. 왜 그래야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위로를 받았다.
바야흐로 봄이다,라고 사람들은 말을 하고 신문과 잡지는 떠들어댄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문자 그대로 정보일 뿐, 내가 봄을 비로소 느낀 건 이러한 일상의 단편적인 사건들을 통해서였다. 다소 상투적이고 상징적이긴 하지만 나는 꽃으로부터, 또 쑥, 냉이에서 봄을 보고 그렇게 봄을 지내고 봄 안에 살고 있다.
우리는 알고 있다. 어김없이 매년 돌아오는 봄이지만, 매년 같은 자리에 피고 지는 꽃일지언정, 보지 않으면 지나쳐버리고 만다는 것을.
화가인 조르지오 모란디(Giorgio Morandi, 1890~1964)는 세계를 여행하더라도 아무것도 보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보려하려기 보다는 지금 보고 있는 것을 열심히 봐야한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그래 열심히 보자.
멀리서, 가까이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혹은 가늘게 뜨고.
어쩌면 열어놓은 작업실 창문으로 날아 들어온 도봉산 산모기를 잡느라 박수를 치는 와중 꽃놀이 한 번 못가보고 여름을 맞이하게 될까 두려운 마음이 들어 허투룬 일상사에 의미를 붙여보는 것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조금 더 감상적이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지금은 봄이지 않은가!
# by | 2008/04/21 18:12 | soliloquy | 트랙백 | 덧글(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