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1월 29일
신체, 장소의 앨리스化 : 안강현의 비디오 퍼포먼스 – 정현
신체 :
안강현은 비디오의 주인공이자 보여지는 자이고 비디오는 그녀를 쫓아간다. 그녀의 무대는 실제 장소이지만, 계획된 지형을 사유한다기 보다 우연히 부딪히는 장소의 사건 속에 개입되거나 삽입되는 형식을 취한다. 이 지점에서 안강현의 신체는 그녀가 현재 속해있는 장소가 지니고 있는 상투적인 이미지를 차용한다. 작가는 자신이 거주하는 장소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인 신문이나 전화번호부 또는 지역주민들이 기증해 준 헌 책들을 이용해서 종이옷을 만든다. 상투적 이미지 혹은 정치적으로 부여된 문화 정체성의 기호를 그대로 답습한 듯한 종이옷의 패턴은 그녀의 신체를 이상한 나라에 빠져버린 « 앨리스 »로 바꿔버린다. 사실 하나의 기호화된 민속적인 문화형태인 전통의상을 다른 문화, 인종, 언어권의 사람이 입고 실제 거리를 활보한다는 것은 오히려 이질적인 현상을 자아낸다. 이상한 나라에서 앨리스는 자신이 있던 세계와 다르게 시간적 공간적 척도가 사라져버린, 즉 다른 논리의 세상으로 흡입되지 않았던가. 그 이상한 세상에서 앨리스의 몸은 자신이 소유한 것이 아닌 그 곳의 논리에 의해 줄어들거나 커져버리면서 제어불능의 상태에 빠지고 만다. 다시 말해, 안강현의 종이옷은 자신의 신체를 확장시켜주는듯 하지만, 반대로 장소의 논리로 편입시키는 기호화된 신체로 전치된 형태이다. 프랑스의 비디오 이론가 뒤게(Anne- Marie Duguet)교수는 비디오 매체가 시각화하는 신체를 재건축된 총합적 신체로 정의내리고 있는데, 나는 비디오 퍼포먼스 속에 나타난 안강현의 신체 역시 위의 정의에 부합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총합적 신체가 내포하고 있는 것은 신체와 환경 사이의 관계성을 주목하는 것인데, 비디오 매체가 이 둘 사이의 관계를 조절하면서 서로를 연합시키거나 때론 병치, 혼합시켜버리는 매체적 특성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총합적 신체란 주변환경의 접점을 찾아가는 신체성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장소 : 갑자기 낯선 장소에 떨어진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이야기가 등장한다면 ? 타향에서 가장 먼저 나를 반기는 것은 낯선 공기와 다른 언어 그리고 작은 가이드북을 연신 훔쳐보기와 이방인 되기일 것이다. 가면을 쓴 채 어떤 낯선 곳의 공항대합실을 빠져나오고, 집시들의 마시장에 종이말을 들고 나타난 동양여자. 헬륨 풍선 몇개를 달고 마치 동화 속 주인공처럼 종이말을 들고 걸어가는 그녀에게 집시아이들은 친절하지 못한 정도를 넘어서서 그녀의 말을 마구 짖밟는다. 낯선 동양여자는 소리를 지르고 짜증을 내지만 좀처럼 집시아이들의 난장판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 너의 말, 나의 말 »은 안강현의 비디오 퍼포먼스 작업 중 가장 다큐적인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만약 내가 엘리스가 되어 거울 반대편 세상으로 들어간다면, 또는 이상한 나라 안에서 의외의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면 말이다. 이런 상상으로 또는 루이스 캐럴의 환상 속으로 안강현의 작업을 해석해보자.
장소를 사유하는 방식은 무한하다. 예술가는 지도를 보고 등고선을 따라가는 수동적인 태도의 여정을 거부한다. 그들은 (본질적으로는) 제도적 관습을 해체하고 사전적 정보와 함께 개인적인 사유 또는 체험을 통한 총합적 태도를 의지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내게 안강현의 작업의 첫인상은 다다이스트적이기도 하고 때론 초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상한 앨리스와 같은 세상 속을 부유하거나 유목하는 과정이 그러했으며, 언어적 확장과 우발적으로 보이는 언어 꼴라쥬는 다다적인 감성을 전달하는 듯 느껴졌다. 게다가 작가가 거주했던 아일랜드 레지던시가 주는 개인적인 영감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왜 그녀의 작업에서 제임스 조이스가 느껴지는걸까 ? 짐짓 유쾌한 소녀적 감성으로 보여지지만, 그 속에서 공간을 접어버리고 시간성의 상실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특히 « 너의 말, 나의 말 » 작업의 서문을 대신하는 단어 꼴라쥬와 그녀 작업실 벽에 무질서하게 붙여놓인 낙서같은 단어들의 나열은 단어가 지닌 통상적 의미를 불확실하게 만들면서 다른 차원의 의미로 연동작용시키는 듯한 인상을 받게한다. 언어 꼴라쥬는 실제 비디오 퍼포먼스의 밑그림과 같다. 말라르메의 시 « 주사위 던지기 » 처럼, 루이스 캐롤의 앨리스처럼 안강현은 어떤 시공간, 어떤 장소로 던져진다. 한 번의 던짐의 만드는 파문과 우연의 초현실적 상상력과 비디오 매체의 특성인 소리와 이미지 사이의 조합과 해체에 의해 작가는 ‘지금’과 ‘여기’라는 현장성과 현재성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유쾌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 by | 2008/01/29 13:36 | critique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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